집주인이 내가 없을때, 집을 보여 달라고 하면?


전세나 월세 계약 만기가 가까워지면 집주인이나 부동산에서 이런 연락이 올 수 있어요.

“다음 세입자가 집을 한번 보고 싶어 하는데 언제 가능하세요?”

퇴근이 늦거나 집을 오래 비우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러다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럼 비밀번호만 알려주세요. 저희가 잠깐 보고 나올게요.”

혼자 살고 있다면 여기서 바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아요.

집을 안 보여주자니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같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자니 내가 없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이럴 때는 한 가지만 먼저 구분해두면 돼요.

집을 보여주는 데 협조하는 것과 내가 없는 집에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에요.

집주인이 소유자라고 해서 현재 세입자가 생활하고 있는 집에 언제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계약서에 집 보여주기 특약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보세요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면 계약서를 한번 꺼내보는 게 좋아요.

특약에

계약 종료 전 새로운 임차인이나 매수인에게 주택을 보여주는 데 협조한다

같은 문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다면 특별한 이유 없이 모든 방문을 계속 거부하기보다는 가능한 시간을 정해서 협조하는 편이 좋아요.

하지만 여기에서도 한 가지는 나눠서 봐야 합니다.

‘집을 보여주는 데 협조한다’는 것과 ‘내가 없는 동안 출입해도 된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에요.

특약에 단순히 방문 협조라고 적혀 있다면 그것만으로 현관 비밀번호까지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없는 시간의 출입이 불편하다면 가능한 방문시간을 따로 제시하면 돼요.


“비밀번호만 알려주세요”라고 하면 꼭 알려줘야 할까요?

불편하다면 알려주지 않아도 돼요.

현관 비밀번호는 단순한 연락처와 달라요. 번호를 알고 있으면 실제로 집 안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혼자 사는 집에는 노트북이나 계약서, 금융서류, 택배 송장, 옷이나 개인용품처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물건도 그대로 있을 수 있어요.

중개업소에 비밀번호를 한번 알려주면 누가 그 번호를 전달받았는지, 방문이 끝난 뒤에도 누가 알고 있는지 세입자가 모두 확인하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부재중 출입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렵게 말할 필요가 없어요.

“집을 보여드리는 건 괜찮습니다. 다만 제가 없는 상태에서 출입하는 건 어렵습니다. 제가 가능한 시간을 알려드릴 테니 그때 방문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집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방문 방법을 정하는 거예요.


내가 없는 시간에 보여주는 게 오히려 편하다면?

반대로 세입자 입장에서도 빨리 다음 세입자가 정해졌으면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사를 준비하면서 매번 방문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면 부재중 방문에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비밀번호만 보내고 “알아서 보고 가세요”라고 끝내지는 않는 걸 추천해요.

적어도

누가 들어오는지,
몇 시에 방문하는지,
몇 팀이 오는지,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지

정도는 먼저 정해두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문자로 남길 수 있어요.

“오늘 오후 4시부터 5시 사이에 ○○부동산 중개사와 방문객 한 팀이 집을 보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른 시간에 방문하실 때는 다시 연락해주세요. 내부 사진이나 영상 촬영은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법에서 정한 문구가 아니에요.

내가 어느 범위까지 출입을 허락했는지를 서로 다르게 기억하지 않도록 남기는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한 번 허락했다고 다음에도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 건 아니에요

화요일 오후 한 번의 방문을 허락했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목요일에 별도의 연락 없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처음부터

“이번 방문에 한해서 동의합니다.”

라는 점을 분명하게 해두는 게 좋아요.

도어락에 일회용 비밀번호나 임시 비밀번호 기능이 있다면 제품에서 해당 기능을 지원하는지도 확인해볼 수 있어요.

기존 비밀번호를 알려준 경우에는 집을 보여주는 일정이 끝난 뒤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고요.


집은 보여줘도 사진까지 찍게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려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아직 생활하고 있는 집이라면 생각보다 많은 개인정보가 사진에 담길 수 있습니다.

택배 송장의 이름과 전화번호, 회사 서류, 컴퓨터 화면, 가족사진, 병원서류 등이 그대로 찍힐 수 있죠.

그래서 집 내부를 직접 보여주는 것과 사진·영상 촬영은 따로 생각하는 게 좋아요.

촬영이 불편하다면 미리 말해두세요.

“집을 직접 확인하는 건 괜찮지만 아직 거주 중이라 내부 사진이나 영상 촬영은 어렵습니다.”

광고용 사진이 꼭 필요하다면 개인 물건을 정리한 뒤 세입자가 직접 찍어 전달하는 방법도 있어요.


집주인이 “내 집인데 왜 못 들어가요?”라고 한다면?

소유자는 집주인이 맞아요.

하지만 임대차계약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세입자가 그 주택을 실제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인도하고 계약기간 동안 사용·수익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어요.

또 형법 제319조는 사람이 주거하거나 점유하는 공간에 대한 주거침입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조심할 점도 있어요.

집주인이 세입자의 동의 없이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경우가 곧바로 형사상 주거침입죄가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은 실제 주거침입에 해당하는지 볼 때 단순히 거주자의 의사에 반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출입 방법과 경위,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해 주거의 사실상 평온을 해치는 방식으로 들어왔는지를 판단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집주인이라고 해서 현재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누수나 화재 위험 때문에 들어오려는 경우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해요

다음 세입자가 집을 보러 오는 것과 건물에 생긴 문제를 급하게 확인하는 것은 같은 상황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배관이 터져 아래층으로 물이 계속 새고 있거나, 즉시 확인하지 않으면 건물 손상이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민법 제624조는 임대인이 임대물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경우 임차인이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다음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와

“배관이 터져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피해가 커집니다.”

는 똑같이 생각하면 안 돼요.

단순한 집 구경인지, 실제로 긴급한 보존·수리가 필요한 상황인지 먼저 구분해보세요.


방문 요청이 계속 온다면 가능한 시간을 미리 정해두세요

계약 만기가 가까워지면 집을 보겠다는 연락이 여러 번 올 수 있어요.

“오늘 저녁 가능하세요?”

“지금 근처인데 잠깐 보고 가도 될까요?”

이런 연락이 계속 오면 생각보다 생활이 많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방문 요청이 올 때마다 시간을 정하기보다 처음부터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주는 게 편해요.

예를 들면

“평일은 오후 7시 이후에 가능하고 토요일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가능합니다. 방문 전에 연락 부탁드립니다.”

정도로 정해두는 거예요.

부동산에서도 그 시간에 맞춰 방문객을 안내할 수 있고, 세입자도 매번 생활 일정을 바꿀 필요가 줄어들어요.

협조한다는 건 내 생활을 모두 집 보여주는 일정에 맞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집을 안 보여주면 보증금을 못 줍니다”라고 한다면?

이 말을 들으면 마음이 급해질 수 있어요.

특히 전세라면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려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음 세입자가 아직 구해지지 않았다는 것과 기존 임대차가 끝난 뒤 집주인이 부담하는 보증금 반환문제는 같은 것은 아니에요.

집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증금 반환의무가 자동으로 사라진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계약서에 방문 협조에 관한 특약이 있고, 세입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모든 방문을 계속 거부했다면 별도의 계약상 분쟁이 생길 가능성은 따로 살펴봐야 해요.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방문 자체를 모두 막는 것도 아니고, 비밀번호를 넘겨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하는 것도 아닌 방식이에요.

내가 가능한 시간과 방문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그 내용을 문자로 남겨두는 게 좋아요.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미 집에 들어왔다면?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물건 위치가 달라졌거나 도어락에 모르는 출입기록이 남아 있다면 먼저 기록부터 남겨두세요.

도어락 기록이 있다면 캡처하고, 공동현관이나 관리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출입기록이 있다면 보존이 가능한지도 문의해볼 수 있어요.

그다음 집주인이나 중개업소에 문자로 확인해보세요.

“오늘 제가 허락하지 않은 시간에 집에 출입하셨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누가 몇 시에 어떤 목적으로 들어왔는지도 알려주세요. 저는 해당 시간의 출입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면 비밀번호도 변경해두는 게 좋아요.

동의하지 않은 출입이 반복되거나 상황이 심각하다면 경찰이나 법률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보세요.

주거침입 여부는 출입 경위와 방식,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결국 내가 없을 때 집을 보여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집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세입자도 계약 종료가 가까워지면 가능한 범위에서 방문 일정에 협조하는 게 서로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선은 분명히 해두는 게 좋아요.

집을 보여주는 데 협조하는 것과 내가 없는 집에 들어갈 권한을 넘겨주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내가 없는 시간의 출입이 싫다면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을 제시하면 됩니다.

부재중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면 누가, 언제, 몇 번 들어오는지와 사진·영상 촬영 여부까지 정해두세요.

그리고 한 번의 방문을 허락한 것이 이후의 자유로운 출입까지 허락한 것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기록을 남겨두는 게 좋아요.

혼자 사는 집에서 현관 비밀번호는 단순한 편의정보가 아닙니다.

누가 언제 내 생활공간에 들어오는지는 내가 알고 정하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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